일상

사시코 걸즈, 낡은 것을 감추지 않는 일본 자수 프로젝트

swizard 2026. 7. 12. 09:24

 

중앙일보에서 사시코 걸즈(Sashiko Gals)를 다룬 기사를 봤다.

제목만 보고 일본 전통 자수 공예 소개 글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패션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브랜드가 아니라 프로젝트'라는 표현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낡은 걸 오래 쓰는 이야기에 요즘 자꾸 끌린다.

얼마 전 여행가방 글도 그렇고. 그래서 이 팀이 더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사시코 걸즈는 누구인가

 

일본 이와테현 오쓰치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여성들의 프로젝트다.

멤버는 40대에서 80대까지, 15명 정도. 대부분 마을의 어머니이자 할머니들이다.

시작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었다.

(이와테는 그때 지진과 쓰나미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진원지 인근지역이다.)

 

집과 일자리를 잃고 대피소에서 지내던 여성들이 사시코 바느질로 물건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게 '오쓰치 사시코 프로젝트'였다.

시간이 지나며 관심이 줄고 멤버도 고령화되자, KUON이라는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후지와라 아라타가 2024년 '사시코 걸즈'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다시 세웠다.

 

사시코(刺し子)는 원래 해진 옷을 오래 입으려고 천을 덧대고 바느질하던 기법이다. '작은 바늘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기술인데, 이들은 이걸 보존만 하지 않고 스니커즈, 데님, 모자에 얹어 새로운 디자인으로 확장했다.

 

지금은 VEJA, 뉴발란스, 노스페이스, 랄프로렌, 뉴에라 같은 브랜드와 협업한다. VEJA 스니커즈 콜라보는 딱 12켤레만 만들어졌고, 한 켤레에 수십 시간이 들어간다. 10년 넘은 장인도 한 켤레에 약 30시간, 하루 3시간씩 작업해서 3주가 걸린다고 한다.

 

출처 KUON TOKYO

 

디자인 관점에서 눈에 남은 것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자수를 장식으로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보통 자수는 옷을 꾸미는 요소로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사시코 걸즈에서 만든 작품들은 찢어지거나 닳은 부분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거기에 천을 덧대고 손바느질을 반복해서 하나의 패턴으로 완성한다. 사시코 자체가 수선기술에서 시작한 것에서 의미를 이어가는 것 같다

 

사용하면서 생긴 흔적이 지워야 할 결함이 아니라, 물건이 지나온 시간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작품을 보면 완성된 모양보다 그 안에 쌓인 시간과 과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새것보다 오래 쓴 것의 가치를 말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VEJA라는업체가 이 콜라보를 진행하는 캠페인을 'Clean, Repair, Collect'라는 수선·순환 캠페인의 일부로 홍보하는 것도 그래서인 듯 하다.

 

https://youtu.be/juWee0CJuek?si=4X2VdOh8qAN-d-i1

 

 

집에 있는 물건에 응용한다면

보고 있으니 집에 있는 물건에도 충분히 응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나는 손재주가 없어서 상상만 했다. 상상은 자유다.

만약 응용한대도 정통 사시코 스타일로 하진 않겠지 싶다(그런 침착/꾸준함따위 없어)

  • 오래 신은 스니커즈 — 가죽이 닳거나 긁힌 부분을 감추기보다 사시코 스티치로 강조. 스스로를 강조하는 로고나 색상이 있다면 활용해서 포인트로 다.
  • 데님 재킷 — 팔꿈치나 포켓 주변에 다른 톤의 데님을 덧대고 직선 스티치. 색 바랜 데님이랑 진한 톤이랑 대비가 셀수록 재밌는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
  • 에코백 — 무지 에코백은 처음 시도하기 좋다. 모서리나 손잡이 연결부에 격자나 작은 십자 스티치. 기본디자인연습용으로도 좋겠고
  • 셔츠 커프스·포켓 — 직선 스티치를 더하면 멀리선 깔끔하고 가까이선 손바느질 디테일이 보인다. 과하지 않은 포인트 좋아하면 제일 부담 없다.
  • 모자 — 챙 끝이나 옆면에 작은 패턴. 사용감 있는 캡이나 버킷햇일수록 자연스럽다.

마무리

가장 크게 느낀 건 '수선'과 '디자인'의 경계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거였다.

낡은 흔적을 감추는 대신 그 시간을 디자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방식.

빠르게 사고 빠르게 버리는 요즘 소비랑은 다른 결이다.

새 물건을 사는 것보다 이미 가진 걸 오래 쓰고, 작은 손바느질 하나로 새로운 이야기를 얹는 것.

 

내가 요즘 낡은 가방이며 오래된 물건에 자꾸 마음이 가는 이유랑 어딘가 닿아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여전히 바느질은 안 할 거다.

(호기심으로 산 재봉틀도 이십년째 잠자고있다)

그래도 이런 태도 하나쯤은 배워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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